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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여인희생으로 조총 얻어 임진왜란 도발
- 오수진
- 조회 : 1415
- 등록일 :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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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희생으로 조총 얻어 임진왜란 도발 | |||||||||
[김문환의 유물풍속문화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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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3년 1592년 4월 나고야에 지휘소를 차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진군 명령을 내린다. 1592년 4월 12일 대마도를 떠난 고니시 유키나가는 13일 부산진에 닻을 내려, 부산진 첨사 정발의 항전을 무력화시킨다. 14일 온천물로 이름 높은 동래성으로 올라온다. 고니시는 동래성문 앞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써 펼쳐 보인다. "전즉전(戰卽戰)부전(不戰)가아도(假我道), 싸울 테면 나와 싸우고 아니면 길을 비켜 달라"는 최후통첩이다. 성위에서 이를 바라보던 청주출신의 동래부사 송상현이 이내 큼직한 글귀를 써 아래로 펼친다. "전사이(戰死易)가도난(假道難),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 결사항전의지를 밝힌다. 하지만, 애국심으로 저항하던 조선 군사들은 왜군의 조총세례에 허무하게 무너진다. 요원의 불길처럼 진군하는 왜군 기세 앞에 24일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서 패하고, 29일 도순변사 신립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다 목숨을 잃는다. 마침내 5월 2일 수도 한양이 왜군 수중에 떨어진다. 선조는 북으로 몽진하고 도성은 불탄다.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4월과 5월은 이처럼 우리에게 임진왜란의 흑역사를 짙게 드리운다 |